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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남은 청년 점포
당시 22곳 중 현재 1곳만 영업 중
1년짜리 청년몰 사업의 그림자

열정 가득한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거리를 배꽃으로 수놓았다.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한껏 차려놨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청년들도 신이 났다. 하지만 이내 흥미를 잃은 사람들이 조금씩 발길을 끊고 키다리 아저씨 같던 지원금마저 끊기자 청년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끝난 이화여대 앞 골목 청년몰 이화52번가의 자화상이다. 

청년몰 사업 당시 북적였던 이화52번가엔 다시 침체가 내려앉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청년몰 사업 당시 북적였던 이화52번가엔 다시 침체가 내려앉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스몰 비즈니스를 위한 빅 프로젝트, 워크 투게더.’ 청년창업가 육성은 물론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단계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역사회의 특성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이런 내용을 담은 계획서를 제출해 중소벤처기업부(당시 중소기업청)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청년몰 조성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다른 지자체들이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나섰을 때, 이대는 대학가 상권을 살리겠다고 나선 거다.

최대 15억원에 이르는 지원금으로 이대는 2017년 말까지 ‘이화 스타트업 52번가’의 공동 브랜드 개발과 공동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스마트 페이 및 비콘(근거리 무선통신 장치) 시스템 구축, ICT 카페 창업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중에서도 주목을 받은 건 ‘이화 스타트업 52번가’ 개발 사업이었다. 침체한 이대 앞 골목에 청년몰을 조성하겠다는 거였다.

이 사업목표에 따라 만 39세 이하의 청년 22명이 이대 정문 왼쪽 골목 ‘이화52번가’에 자신만의 점포를 열었다. 음식점과 카페는 물론 공방, 한복대여점, 서점도 들어섰다. 이곳에 둥지를 튼 청년상인들은 사업 초기 인테리어 비용 100만원과 1년 동안 임대료(3.3㎡당 최대 11만원)를 지원받았다. 


공실이 넘쳐나던 곳에 청년들이 들어오자 전에 없던 활기가 차올랐다. 이 사업으로 서대문구는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주최한 ‘2018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특별부문상을 받기도 했다. 이화52번가 청년몰 사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상권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년간 시행한 사업이 종료되자 청년들이 하나둘 이화52번가를 떠났다. 사업을 따온 학교도, 사업을 같이 시행하던 관할 지자체의 관심도 눈에 띄게 줄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청년몰이 휩쓸고 간 그곳 이화52번가를 가봤다. 

지난 6월  3일 금요일 오후, 한장의 리플릿을 들고 이대 정문 앞으로 갔다. 2018년 사업 추진 당시 서대문구가 이화52번가 활성화를 위해 만들었던 리플릿이었다. 이 종이엔 골목 구석구석 어떤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싶었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가듯 이대 정문 왼쪽에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풍경과 마주한다. 골목 입구엔 이화52번가 상점가라는 걸 알리는 안내판이 자리잡고 있지만 안내판에 걸렸던 것으로 보이는 지도는 무슨 연유에선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마저도 함부로 자란 개망초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씁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골목 안으로 더 들어갔다. 골목의 시작을 알리는 옷가게를 지나니 리플릿 속 첫번째 상점인 ‘라꼬뜨 데 꼼빠뇽’이란 간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누군가는 아직 이곳을 지키고 있을 거야.’ 기대감을 갖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상점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몇년 전 청년몰을 조성할 때 입점한 점포 맞죠? 아직 있네요?” 가게주인 이자영(가명)씨는 “예전 가게가 쓰던 간판인데 아직 못 바꿨다”고 말했다. 

“청년몰 사업은 잠깐 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그 이후에 들어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창 힘들 때 이 상권에 무슨 생각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란 기대는 있어요. 옆 가게도 장사를 안 한 지는 한참 됐는데, 임대 안내가 아직 안 붙었더라고요. 다시 오겠다는 의미 아닐까요? 다시 사람들로 북적였으면 좋겠어요.”

기자가 참고했던 당시 청년몰 리플릿.[자료=서대문구청]
기자가 참고했던 당시 청년몰 리플릿.[자료=서대문구청]

이자영씨가 말한 옆 가게는 커피 배달전문점 ‘카페 셔틀즈’다. 2016년 이곳에 들어온 셔틀즈는 지난해 말까지 영업했다. 2021년 12월 29일 영업을 종료하며 고객들에게 전하는 인사말을 유리문에 붙여놓아 그 역사를 알 수 있다. 영업 당시 주문받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전화번호로 몇번 연락을 취해봤지만, 연결은 되지 않았다.

라꼬뜨 데 꼼빠뇽과 카페 셔틀즈 맞은편엔 수공예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는 ‘울리 크래프트’가 있었다. 이곳 역시 외관은 그대로다. 짙은 초록색 인테리어와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는 건 수공예 디자인 상품 판매점이 아닌 백발의 어르신이 손바느질을 하고 있는 옷수선집과 민화공방이다. 옷수선집의 정순애(가명)씨는 고개만 슬쩍 돌려 “몇년 전에 학교에서 했던 건데 지금은 없다”고 말한 뒤 바느질을 이어갔다.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던 ‘선라이즈 워크샵’, 모던한복을 대여해주던 ‘에올라타’, 그림책 위주로 판매하던 작은 서점 ‘괜찮은 책방’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테이크아웃 수제버거집 ‘마이버거’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2017년 이화52번가에 입성했던 한 청년상인은 “개인적인 일 때문에 1년 만에 그곳에서 나왔다”면서 “계속 있었다고 해도 상권이 침체돼 쉽진 않았을 것 같다”고 밝혔다.

리플릿 속 22개 점포 중 현재 남아 있는 건 지중해식 샐러드를 판매하던 ‘샐러듀 팩토리’ 한곳뿐이다. 이곳은 SNS에서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점포를 확장해 지금은 지중해식 가정식 식당 ‘위샐러듀’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곳 말고는 간판으로 남은 몇몇 점포만 있을 뿐, 청년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화52번가 상점가’라는 문구와 이대를 상징하는 배꽃 문양이 그려진 초록색 깃발만이 거리 곳곳에서 외롭게 나부낄 뿐이었다. 

그렇다면 청년창업가를 육성하고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는 그때 그 목표는 얼마나 이뤄졌을까. 서대문구 관계자는 “청년몰 사업은 정책적으로 실패한 게 맞다”면서 말을 이었다.

“청년몰 사업은 국비를 받아서 1년 동안 진행했던 사업이다. 예산이 끊기고, 청년들의 열정도 사그라지면서 지속하기 어려웠다. 정책은 실패했지만 청년들에겐 어떤 경험이라도 됐길 바란다. 사실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것만으로는 청년들이 자립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은 직접적으로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것보다 거리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1년짜리 사업에 참여했던 청년, 그 1년짜리 사업을 추진했던 지자체에는 ‘경험’이라도 남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아프고 찝찝한, 더는 하지 말자’라는 쓰디쓴 기억만 남았을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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