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없는 지방선거의 민낯

2년 전 총선을 기억하는가. 당시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민의를 더 반영할 수 있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흔들었다. 총선 후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을 접고 전리품戰利品(의원ㆍ국고보조금)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잘못을 성찰하는 의원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하는 의원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6ㆍ1 지방선거가 찾아왔다. 그들은 또다시 ‘국민’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국민을 우롱했지만 단 한번의 사과도 없었다. 사진은 당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비판한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사진=뉴시스]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국민을 우롱했지만 단 한번의 사과도 없었다. 사진은 당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비판한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사진=뉴시스]

3월 대선에 이어 또다시 선거다. 6월 1일은 각 지자체장과 지역의회 의원, 교육감 등을 뽑는 지방선거날이다. 벌써부터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대결이 치열하다. 정당별 지지율 조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주목할 점은 ‘위성정당 논란’ 후 처음 맞는 지방선거란 거다.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힘)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을 쓸어가는 꼼수를 부렸다. 군부독재 시절, 정통성이 결여된 정부가 다당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만들었던 위성정당이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부활한 셈이다. 이를 두고 ‘정당정치의 흑역사’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인 중 누구 하나 국민 앞에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거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누굴 뽑을 것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위성정당 문제를 다시금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성이나 성찰이 있어야 다음 선거도 있는 법이다. 

■발단-준연동형 비례대표제 = 2020년 4ㆍ15총선에서 위성정당 난립 사태의 불씨가 된 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이 제도는 대체 뭘까. 원래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거대 양당이 지역구뿐만 아니라 비례대표 의석까지 독식하면서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됐다. 가령, 기존에는 지역구 의석은 그대로 둔 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했다. 그러다 보니 늘 거대정당은 정당 득표율보다 비례대표 의석을 더 많이 차지하고, 소수정당은 정당 득표율보다 비례대표 의석을 더 적게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당선인 수를 제외한 후,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지역구 의원이 없어도 일정 기준만 넘으면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으니 소수정당에 더 유리하다.

이 시스템에선 간혹 지역구 의원이 많이 당선돼 전체 의석이 늘어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47석) 중 일부(17석)는 기존대로 배분하고, 일부(30석)는 지역구 결과에 연동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들었다. 2019년 12월 선거법 개정을 통해서였다. 

■탄생-위성정당 창당 = 지역구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들로선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소수정당의 지지가 필요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였지만,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반발했다. 

그래서 미래통합당이 생각해 낸 게 위성정당 창당이었다. 지역구 의석 때문에 배분받지 못하는 비례대표 의석을 위성정당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는데, 두말할 필요 없이 꼼수였다. 숱한 비판이 제기됐지만, 2020년 2월 5일 미래한국당이란 간판을 내건 위성정당이 창당됐다.

그러자 한달 후인 3월 8일 더불어민주당도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이들이 결집해 열린민주당이란 위성정당도 창당했다. 애초에 민의를 더 잘 대변하기 위해 만든 선거시스템이 위성정당 창당으로 엉망진창이 된 거였다. 

■소멸-사라진 위성정당들 = 위성정당들의 선거 성적표는 어땠을까. 졸속으로 창당해 엉터리 공약들을 내놨지만 선거 성적표는 기대치를 웃돌았다. 지역구 의석이 많았던 더불어민주당은 애초 6석의 비례대표 의석밖에 못 받을 처지였지만 위성정당 2개를 통해 총 20석(더불어시민당 17석ㆍ열린민주당 3석)을 얻었다.

미래통합당은 원래 15석을 얻었어야 했지만 미래한국당을 만든 덕에 19석을 차지했다. 반면 위성정당의 등장으로 소수정당은 손해를 봤다. 국민의당은 14석의 비례대표를 얻을 수 있었지만 총 3석을, 12석을 배분받을 수 있었던 정의당은 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오로지 비례대표 확보만을 위해 탄생한 만큼 총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성정당들은 모당母黨과 합치는 방식으로 해산했다. 더불어시민당은 창당 두달 만인 2020년 5월 18일 더불어민주당과 합당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제명을 통해 무소속이 되거나 기존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으로 돌아갔다.[※참고: 비례대표는 탈당하면 당적을 잃는다. 하지만 제명 절차를 밟으면, 비례대표가 탈당하거나 당적을 바꾸더라도 의원직을 유지한다. 사실 이 조항의 목적은 국회의원의 소신을 지켜주는 것이지만, 엉뚱한 곳에서 효력을 발휘했다.] 

미래한국당은 2020년 5월 29일 미래통합당과 합당했다. 열린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과의 갈등으로 인해 합당에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올해 1월 18일 합당했다. 이들은 위성정당을 해체하면서 의원직과 함께 국고보조금도 두둑이 챙겼다. 이들 세 정당이 창당 이후 해산되기까지 받은 국고보조금은 총 143억2189만원(미래한국당 86억3016만원ㆍ더불어시민당 34억2962만원ㆍ열린민주당 22억6211만원)에 달했다. 

■잔재❶ 엉터리 공약들 = 오로지 비례대표 의석만을 위해 급조됐다가 사라진 정당들의 공약이 제대로 준비됐을 리 없다. 3당의 공약 중에는 서로 중복되는 게 수두룩했다. 공약을 통해 정체성을 확보하거나 차별화를 꾀하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경쟁 당의 좋은 공약을 가져다 넣거나 모당의 공약을 끼워 넣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실제로 더불어시민당은 더불어민주당의 공약들을 순서만 바꾼 채 내용은 거의 그대로 베껴 왔다. 이 때문에 일부 공약은 현실화하긴 했지만 더불어시민당의 공功이 되진 못했다. 

열린민주당은 경험이 있는 정치인들을 묶어놓은 터라 내용이 아예 없진 않았다. 대부분 정치 개혁을 위한 공약들이었다. 그중엔 검찰의 수사권ㆍ기소권 완전 분리도 있었는데, 이 공약은 현실이 됐다. 다만, 문재인 정부 임기 종료를 앞두고 ‘검수완박’이란 이름으로 국회를 졸속 통과해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미래한국당은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을 뒤집는 내용으로만 공약을 채웠다.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폐기하고, 공직자비리수사처를 폐지하겠다는 등이었다. 당연히 대안을 제시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잔재❷ 모당의 뻔한 공약들 = 공약의 허술함은 위성정당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모당도 마찬가지였다.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1순위 공약(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약 기준)은 ‘벤처 4대 강국 실현’이었다. 이를 위해 2022년까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K-유니콘기업 30개를 육성하고(2020년 당시 11개), 모태펀드에 매년 1조원 이상을 투입해 연간 5조원의 벤처투자액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총선이 끝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태껏 1순위 공약조차 실현하지 못했다. K-유니콘기업은 18개에 그쳤는데, 이들이 건강한 기업인지조차 불투명하다. 대부분이 플랫폼 기업이어서다. 2020ㆍ2021년 2년 연속 1조원 규모의 마중물 예산을 투입해 지난해 역대 최대치인 7조7000억원의 벤처투자액을 달성했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2020년 9월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꾼 미래통합당은 코로나19 극복을 1순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추경을 편성하는 과정에서는 포퓰리즘과 재정건전성을 운운하며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엔 입장을 180도 바꿨다. 2순위 공약인 경제프레임 대전환에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종용하는 세계 에너지 정책 기조와는 달리 원전 옹호론만을 담았다. 국민이 우려하는 원전 부작용을 해소할 방안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의당은 그린뉴딜경제로 한국사회를 대전환하겠다는 공약을 1순위로 내놨다.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환하고, 전기차 1000만대 시대도 열겠다는 거였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기조보다 훨씬 빠른 그린뉴딜을 강조한 건데, 결국 구호에 그쳤다. 

물론 소수정당인 정의당이 공약을 제대로 현실화할 것으로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이 때문에 “기존 제도를 바꿀 수 있는 법안을 내놨지만, 의석수에 밀려 통과시키지 못하는 걸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하지만 거대 정당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법안을 현실화했는지, 법안에 반대하는 정당을 얼마나 설득하려 노력했는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그만큼 공약을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렇게 볼 때 정의당이 제대로 공약을 이행할 준비를 철저하게 꾀했는지는 의문이다. 

■2년 후 일그러진 자화상 = 그럼 이번 지방선거에선 제대로 준비된 공약이 나왔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대선이나 총선에 어울릴 법한 공약들이 나오는가 하면 이미 추진 중인 정책들에 살만 보태 내놓은 공약들이 숱하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을 보면 이게 과연 제1당의 공약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1순위 공약인 ‘소상공인 피해 지원’은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수십조원의 추경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채무부담 경감 정책도 윤 대통령 공약에 이미 포함돼 있다.

자영업자의 필수경비를 지원하겠다는 ‘한국형 PPP(급여보호프로그램ㆍPaycheck Protect Program) 도입’ 공약은 대선 공약의 재탕이다. 자영업자의 임대료를 지원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보완하지 않았다. 

2순위 공약인 ‘무주택ㆍ1주택자 지원과 부동산 불로소득 억제’는 늘 반복되는 공약이다. 자기모순적 공약도 있다. 부동산 공약엔 노후 공동주택의 재개발을 돕겠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지금껏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방향과는 동떨어져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대전환 공약은 대선공약의 재탕이고, 대부분 법 개정의 영역이라 지방선거와도 맞지 않는다. 

지방선거 공약에 ‘지역’ 없어

국민의힘은 최근 여당이 된 현실을 잊은 듯한 공약을 내놨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1순위 공약으로 내걸어서다. 게다가 코로나19 치료제 확보나 후유증 대책, 의료체계 개편 등은 지방선거보다는 대선에 어울리는 이슈다. 

2순위 공약인 ‘주택공급 확대와 주거안정 실현’ 역시 마찬가지다. 로드맵을 수립해 연도별 25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은 지방선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신속한 리모델링을 위한 법적ㆍ제도적 개선, 보유세 체계 개편, 공시가격 현실화 등은 모두 국회의 몫이다.  

지방선거에 어울리는 공약을 내놓은 건 정의당이 유일하다. 1순위 공약으로 ‘수도권 다이어트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걸었다. 기업이 지역에 재투자하도록 조례를 제정하겠다거나 지역에 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을 배치하겠다는 공약은 참신하기도 하다.

지방선거에 등장한 정당의 공약들은 재탕이거나 지방선거와는 무관한 내용이 많았다.[사진=뉴시스]
지방선거에 등장한 정당의 공약들은 재탕이거나 지방선거와는 무관한 내용이 많았다.[사진=뉴시스]

2순위 공약에는 ‘자영업자 지원 확대와 노동권ㆍ노동안전보장’을 내세웠는데, 플랫폼 광고료와 수수료 폐지, 지역화폐와 연계한 공공배달앱 활성화, 지방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하지만 정의당 역시 현실 불가능한 공약이나 대선ㆍ총선에 어울릴 법한 공약들을 내놓기는 마찬가지였다. ‘공공기관 300개 즉시 지방 이전’이나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등이 대표적이다. 

2020년 총선에서 본 것처럼 기득권 정당들은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듣기 좋은 공약으로 국민을 홀리는 것도 그들의 대표 술책 중 하나다. 그렇다고 당선 후 국민을 일일이 챙기는 것도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공약은 어딘가에 내팽개치고, 다음 선거 때 또 공약으로 등장한다. 이를 입증하듯, 6ㆍ1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정당들의 공약 대부분은 재탕삼탕을 넘어 지역과 무관하기까지 하다. 6ㆍ1 지방선거, 이대로 괜찮은 걸까. 

김정덕ㆍ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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